평양8경

밀대상춘(密臺賞春)

을밀대에서의 봄 경치
평양직할시 중구역에 있는 고구려의 누정. 합각지붕 건물로 북한의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누정이 을밀봉에 있어 을밀대라고 하지만, 사방이 탁 틔어 있다고 하여 ‘사허정(四虛亭)’이라고도 한다. 을밀대는 6세기 중엽 고구려가 평양성의 내성을 쌓으면서 그 북장대(北將臺)로 세운 것으로 지금 있는 건물은 1714년(숙종 40)에 다시 세운 것이다. 

부벽완월(浮碧玩月)

부벽루에서의 달 구경
부벽루는 평양시 중구역에 위치한 조선시기의 건물로서, 393년에 건립한 것을 1614년에 재건하였다. 부벽루는 금수산 모란봉의 동쪽, 대동강가에 깎아지른듯 솟구친 청류벽 위에 서 있는 누정이다. 부벽루는 고구려때인 393년에 세운 영명사의 부속건물이 었는데 그 때는 그 이름도 영명루라고 불렀다. 그 후 12세기에 이르러 대동강의 맑고 푸른 물위에 떠 있는 듯한 누정이라는 뜻에서 부벽루라고 고쳐 부르게 되었다.이 누정은 세운 이래 여러 차례 재건과 보수를 거듭 하였는데 고려 때 고쳐 지은 것이 임진왜란 때 왜적들에 의하여 불타서 1614년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 
정면 5칸(14.58m), 측면 3칸(7.68m)에 2익공 두공을 얹은 날씬한 흘림기둥이 합각지붕을 떠받들고 있다. 이 기둥은 넙적하게 다듬은 둥근 주춧돌 위에 서 있는데 그 간격은 가운데 칸을 제일 넓게 하고 양옆으로 가면서 조금씩 좁혔다. (주춧돌 가운데 정면의 2개와 후면의 1개는 고구려 때의 주춧돌 위에 덧놓았으며, 전금문으로부터 부벽루로 오르는 좌우 두 곳의 돌계단도 고구려 때의 것이다). 건물 안은 통천장으로 시원하게 하면서도 보, 도리, 서까래 등을 규모 있게 배열함으로써 사뭇 장중히 보이게 하였으며, 모루단청을 하였다. 바닥에는 잘 다듬은 판돌을 깔았으므로 한층 정갈하게 보인다.부벽루는 뛰어난 건축술과 아름다운 경치로하여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더불어 조선 3대루의 하나로 이름 높았다. 부벽루에 올라서면 녹음 우거진 능라도를 품에 안고 청류벽 밑을 씻을 듯이 유유히 흐르는 맑은 물과 강 건너로 시원히 펼쳐진 넓은 들, 그리고 멀리 기복을 이룬 아담한 산들이 한 눈에 안겨와 그 전망이 비할 바 없이 좋다.비단필을 펴 놓은 듯한 맑고 푸른 물과 생신함을 안겨 주는 녹음, 그리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은 하나로 어울려 신비하리만큼 아름다운 경치를 펼치며, 바로 이러한 풍치와 잘 조화되게 지은 것으로 하여 부벽루의 가치는 한결 더 돋우어지는 것이다.
고려 때의 이름난 시인 김황원(1045-1117)이 이 아름다움을 시에 담으려다가 온종일 애쓴 끝에 ‘장성일면용용수 대야동두점점산(긴 성 한 쪽 면에는 늠실늠실 강물이요, 큰 들판 동쪽 머리엔 띄엄띄엄 산들일세)’까지 쓰고는 다음 시구가 더 떠오르지 않아 한스러워서 통곡하며 붓대를 꺾고 말았다는 이야기도 전하여지고 있다. 부벽루의 낮 경치가 그렇듯 좋지만 밝은 달이 떠오른 밤 경치도 그에 못지 않게 훌륭하여 ‘부벽완월(부벽루의 달구경)’은 일찍부터 평양8경의 하나로 되어 왔다.

영명심승(永明尋僧)

영명사를 찾아드는 중들의 모습
북한 평양직할시 금수산(錦繡山)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제1대 동명성왕 유지로 창건한 사찰.

부벽루(浮碧樓)의 서편 기린굴(麒麟窟)의 위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31본산시대에는 평안남도의 사찰을 관할하였던 본산이었다. 동명성왕의 구제궁(九梯宮) 유지에 392년(광개토왕 2)에 창건하고 아도화상(阿道和尙)을 머물게 하였다 한다.

그 뒤 고려시대에는 선종·숙종·예종·인종·의종 등이 대동강에 용선을 띄우고 노닐다가 이 절에서 휴식을 취하며 헌향하고는 하였다. 특히, 예종은 1109년(예종 4) 4월에 문두루도량(文豆婁道場)을 개설하였고, 5월에는 절의 중창을 명하기도 하였다.

1663년(현종 4)에는 총섭(摠攝) 자평(自平)이 당우를 모두 중수하였고, 1703년(숙종 29)에는 구관(句管)이 득월루(得月樓)를 보수하였으나, 1894년(고종 31)의 청일전쟁으로 몇 칸의 당우만을 남긴 채 모두 불타버렸다.

1911년 이 절은 서도(西道)의 본산이 되었고, 1920년 31본산 중의 하나가 되었는데, 이 절과 소속 말사들은 『화엄경』을 근본경전으로 하고 칠조(七祖)가 전수한 종의(宗義)를 이어가는 것을 규범으로 삼았다. 이 때 용반(龍般)이 주지로 취임하여 수년 동안 사찰을 일신시켰으며, 1922년에는 대웅전을 중건하고 당우 및 요사채를 새로 짓기도 하였다.

31본산시대에는 16개의 말사를 통괄하고 있었는데, 대동군의 광법사(廣法寺)·법운암(法雲庵)·영천사(靈泉寺)·두타사(頭陀寺)와 중화군의 옥천사(玉泉寺)·심곡사(深谷寺)·수락암(水落庵)·은구사(殷口寺)·용산사(龍山寺)·길상사(吉祥寺)·고봉사(高峯寺), 용강군의 보림사(寶林寺)·용천사(湧泉寺)·신덕사(神德寺)·회용사(洄湧寺)·일운암(日雲庵) 등이다.

보통송객(普通送客)

보통강에서 나그네를 보내는 광경
평안남도 평원군 공덕면과 동송면에 있는 강룡산(降龍山, 446m)에서 발원하여 평안남도 서부 지방을 남류하면서 대동강으로 흘러드는 강.
강룡산에서 현룡저수지(見龍貯水池)로 유입된 물은 순안평야(順安平野)를 경의선(京義線)과 나란히 흐르다가 평양 서쪽에서 심하게 곡류한다. 큰 비만 내리면 막대한 피해를 겪다가 광복 후 직강화 등 하천정리사업으로 문제를 해결하였다. 본래 강줄기인 보통강운하를 중심으로 300여 정보의 보통강유원지가 조성되었다. 평양의 서쪽에서는 도두산(都頭山)의 능선에 밀려 평양시가에 공격사면(攻擊斜面)을 형성하면서 대동강의 큰 범람원인 두로도(豆老島)의 북쪽 샛강으로 흘러든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이 강을 평양강(平壤江)이라 기록하였으며 대동강 가까운 구정리(九井里)·평천리(平川里)와 같은 지명은 정전(井田)의 잔재로 알려져 있다.

강 연안의 순안평야는 쌀·보리·밀·조·옥수수·콩 등의 농산물의 산출이 많으며, 순안 부근에서는 사금(砂金)의 채취가 활발하다. 특히, 순안의 서쪽 통항천(筒項川)·석암리천(石巖里川) 등의 합류점 사이인 모래톱에서는 사금 채취를 위하여 채금선(採金船)이 많았다. 평양시내에 보통강과 경의선이 맞닿는 곳에 웅장한 보통문(普通門)이 있다. 조선 성종 때 건축된 것으로 평양 6문 중 하나이며 의주로 통하는 문이다.

거문범주(車門汎舟)

거문(거피문, 평양 외성의 남문) 앞 대동강의 뱃놀이 광경
외성의 남문으로 평천구역 평천동에 위치한다. 이 위치는 평천동에서 낙랑구역 낙랑동으로 넘어가는 나루터 부근으로 외성안에 존재했던 중앙대로가 남쪽으로 통하는 곳이다.
평양기성도를 보면 외성의 남쪽으로 성벽이 끊긴 지점에 거문(車門)이라고 표기되어 있으며 문 바깥쪽으로 대동강과 함께 크고작은 배들이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연당청우(蓮堂聽雨)

애련당에서 듣는 빗소리
대동문 안에 있다. 1542년(중종 37)에 감사 민제인이 처음 세우고, 1714년(숙종 40)에 감사 민진원이 중수(重修)하였으며, 1758년(영조 34)에 감사 민백상이 중수하였다.
송암미술관에 소장된 평양기성도에는 애련당의 건물이 주변 연지와 함께 묘사되어 있는 반면 육군박물관에 소장된 평양기성도에는 건물없이 연지만이 표현되어 있다.
지금은 도쿄로 뜯겨간 애련당 의 슬픈운명.

용산만취(龍山晩翠)

용악산의 늦가을 푸르른 모습
평양 룡악산의 가을은 더욱 이채로운 풍경을 띠고 있다고 북한 매체가 소개했다.

북한 대외용 매체인 ‘내나라’는 31일 “산봉우리가 마치 룡(용)이 금시 하늘로 날아오르려는 것과도 같은 생김새를 갖추고 있다는데로부터 그 이름이 유래된 룡악산은 해발높이가 292m”라고 소개했다.

매체는 “중생대 백악기에 있은 지각운동때 륭기(융기)된 다음 신기구조운동으로 기본적인 생김새가 이루어진 룡악산은 사방으로 깊은 골짜기들이 나있으며 산마루 우(위)에는 바위들이 많이 드러나 있어 산세가 험하다”고 전했다.

매체는 또 “이곳에 분포되여있는 600여 종의 식물들 중에는 500여년 자란 룡악산 은행나무를 비롯한 천연기념물들도 있으며, 력사(역사)유적인 법운암과 룡곡서원이 있다”고 덧붙였다.

룡악산기슭에는 만경대소년단야영소와 평양시전쟁로병(노병)보양소가 있으며 룡악산샘물공장, 룡악산비누공장도 있다.

마탄춘창(馬灘春漲)

마탄의 물이 봄에 넘치는 모습
마탄이란 평안남도 북동부 낭림산맥의 서쪽에서 발원하여 남서류하다가 남포특별시 부근에서 황해로 흘러드는 강 중에서 북쪽의 여울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