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8경

연화도 용머리절벽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4번째로 섬이 많은 나라이다. 동쪽에는 독도, 서쪽에는 격렬비열도, 남쪽은 제주 마라도 등이 있다. 모든 섬들은 독자적인 독특한 환경과 문화를 간직하고 있어 더 아름답다. 그 섬들 중에 사람이 살고 있는 유인도가 482개, 무인도가 2900여개라 한다. 그 중 화려한 연꽃의 전설을 담고 있는 꽃섬이 있어 다녀왔다. 바로 통영의 “연화도(蓮花島)”다
천혜의 비경을 자랑하는 연화도는 해안선 길이가 13km로 작은 섬이다. 100여세대 주민 200여명이 살고 있다. 섬 전체가 수국이 심어져 있는데 꽃을 피우기 위해 꽃봉오리마다 꽃망울을 맺고 있다. 수국은 6월 말부터 7월중순까지 만개한다. 연화도의 여름은 수국이 겨울에는 붉은 동백꽃이 만개한다. 아름다운 섬 연화도 그래서 꽃섬이라 부르고 있다. 연화도에 꽃이 피면 연화도 만의 비경을 간직하고 있는 섬이다. 등산객들과 불자들이 많이 찾는 섬이다.
연화도는 불교와 불연(佛緣)이 깊은 전설이 있다. 연화도란 지명은 조선 10대 왕 ‘연산군(1496~1506)’의 억불정책 때 한 스님이 연화도로 피신, 토굴에서 수행하였다 한다. 스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입적할 경우 수장을 시켜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스님이 입적하자 제자들과 주민들은 스님을 바다에 수장을 시켰는데 바다 한 가운데에서 커다란 연꽃이 피어 났다 한다. 이때부터 스님을 ‘연화도인’이라 부르고 섬 이름을 연화도라 불렀다 한다. ‘사명대사’도 연화도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한다. 연화산 연화봉(212m) 아래에는 연화도인과 사명대사가 수행하였던 토굴과 감로수가 있다.

사량도 옥녀봉

통영팔경의 하나인 사량도 옥녀봉에는 애절한 전설이 전해진다. 아주 먼 옛날, 사량도 옥녀봉 아래에 작은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에 사는 부부가 어느날 옥녀라는 예쁜 여자 아기를 출산했다. 그러나 가난 때문에 제대로 먹지도 못한 어머니는 옥녀를 낳은 뒤 병으로 세상을 등졌고, 아버지마저 슬픔에 잠겨 몸져 눕고 말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 아버지도 세상을 하직했다.

기구한 운명의 옥녀는 태어나자마자 고아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때 이웃에 홀로 살던 홀아비가 옥녀를 불쌍히 여겨 자기 집으로 데려다가 동냥젖을 얻어 먹이며 잘 보살폈다. 옥녀는 이 사람을 친아버지로 알고 성장했다.  
세월은 흘러 열여섯이 되자 옥녀는 어여쁜 처녀가 되었고, 그 미모가 아주 뛰어나 주변에 소문이 자자했다. 이즈음 옥녀를 길렀던 의붓아버지는 마음이 동하여 옥녀에게 이상한 행동을 할 낌새를 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옥녀는 그를 친아버지로 알고 있었는데, 슬픔에 잠긴 옥녀는 이러한 위기를 벗어날 묘책을 생각했다. 

“아버지! 제가 간절한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하라는 대로 행하시면 아버지의 요구를 들어드리겠습니다.  내일 새벽 날이 밝기 전에 상복을 입고 멍석을 뒤집어 쓴 채, 풀을 뜯는 시늉 을 하면서 송아지 울음소리를 내며 저 옥녀봉으로 네 발로 기어서 올라오십시오.”

미련한 의붓아버지는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답답한 마음에 눈물로 밤을 새운 옥녀는 다음날 새벽에 옥녀봉으로 올라갔다. 인적 없는 새벽녘에 옥녀봉에 앉아있는데, 상복을 입고 짐승의 모습을 한 의붓아버지가 벼랑을 기어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순간 옥녀는 치마폭으로 얼굴을 가린 채 천 길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졌다. 열여섯 피지 못한 꽃봉오리 하나가 산산이 부서졌다.

사량도 옥녀봉 전설은 타락한 동물적 본능을 엄중히 경고하는 교훈으로 오늘날까지 구전으로 전해오고 있다.

옥녀봉 밑에는 사철 붉은 이끼가 끼어있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옥녀의 피라고들 한다. 이 전설은 대단히 치욕스럽고 부끄러우며 고통스러울 뿐이다. 

한편, 사량도에서는 2004년부터 옥녀봉 등반축제가 열린다. 그러나 정작 옥녀봉의 주인공인 옥녀는 뒷전이고, 등산이 주행사다. 사량도 주민들의 삶 속 깊숙이 자리 잡은 옥녀봉 전설이 영영 사라지지 않기를 고대한다.

남망산공원(충무공원)

충무공원이라고도 불리며, 벚나무와 소나무가 우거진 높이 80m의 남망산을 중심으로 전개된 공원이다. 남동쪽으로 거북등대와 한산도,해갑도,죽도 등의 한려수도의 절경을 바라볼 수 있다. 또한 산꼭대기에는 1953년 6월에 세워진 이충무공의 동상이 서 있다. 공원 기슭에는 조선시대에 1년에 2번 한산무과의 과거를 보았다는 열무정의 활터와 무형문화재 전수관, 시민문화관이 있고 남망산 꼭대기에 올라 공원 안을 한차례 둘러 보면 무엇보다도 먼저 바다를 바라보고 우뚝 서 있는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눈에 띈다.

제승당 앞바다

한산대첩( 閑山大捷)을 이룩한 충무공(忠武公 ) 이순신(李舜臣)의 충절을 기리는 호국의 성지이다. 선조 26년부터 30년(1593년~1597년)까지 수군의 본영으로 해상권을 장악하고 국난을 극복한 중심지이기도 하다.   정유재란 때 원균의 패전으로 한산진영이 불타버리고 폐허가 된후 142년만인 영조 15년(1793년) 조경(趙儆) 제 107대 통제사가 이곳에 유허비를 세우면서 운주당(運籌堂) 옛터에 집을 짓고 ‘제승당'(制勝堂)이라는 친필 현판을 걸었다. 그후 여러차례 증축이 이루어지다가 1975년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경역을 확장, 보수해 오늘날의 모습으로 정착됐다.   뜻을 기리는 것도 좋지만 주변 경관이 몹시 아름다워 놓칠 수 없는 곳이다. 제승당 입구에는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에서 펼쳤다는 ‘학익진(鶴翼陣)’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영문과 한국어, 일본어로 게시판에 적혀 있다. 

달아공원 석양

일몰과 아름다운 전경으로 넋을 놓고 와~하며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곳이 달아 공원이다. 달아공원은 통영시 남쪽의 미륵도 해안을 일주하는 23Km 산양일주도로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달아공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아름다운 한려수도의 절경을 즐길 수 있어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꼽고 있다.

지형이 코끼리 어금니와 닮았다고 해서 달아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현재는 달구경하기 좋은 곳이라는 뜻으로 쓰인다고 한다. 아름다운 산양일주도로에는 동백나무 가로수가 있어서 동백로라고도 불리며, 다도해의 절경을 즐기기에 매우 좋은 곳이다. 이곳은 바다의 참맛을 즐기며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인 곳으로 관해정이란 정자가 있는데 시원한 그늘아래 앉아 여유롭게 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어 관광객들에게 매우 인기가 있다. 특히 이곳에서 보는 일몰이 장관이다. 관해정을 비껴 바다쪽으로 조금 더 나가면 그야말로 땅 끝에 선 기분을 맛볼 수 있는데 삼면에 이름을 갖지 못한 작은 바위섬에서부터 대.소장재도 저도, 송도, 학림도, 곤리도, 연대도, 만지도, 옥곡도, 추도 그리고 멀리 육지열도까지 수십 개의 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늘에 떠있는 조각구름사이로 지는 해가 마지막 정염이라도 불태우듯 찬연한 빛을 보이며 빨강, 노랑, 자주, 분홍 등 오만가지 빛깔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관광객들이 이곳에 서 보고서야 말로만 듣던 한려수도를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고 감탄하는 곳이다.

등대섬

등대섬은 깎아지른 해안절벽을 따라 암석들이 갈라지고 쪼개어진 수평·수직절리들이 기하학적 암석경관을 이루며,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형성된 해식애(절벽), 해식동굴 등이 곳곳에 발달하여 해안 지형 경관이 절경을 이루고 있어 ‘통영 8경’중 하나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섬은 해양성 기후의 영향을 받아 초지가 발달하고 관목류의 식생이 섬 전체를 덮어 아름다운 초지경관을 형성하고 있으며, 해안 절벽 위에 서있는 백색 등대와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하는 등 자연경관적·지질학적 가치가 뛰어나 명승으로 지정하였다.

통영대교 운하야경

통영 운하위에 당동~보디섬~미수동을 잇는 총연장 591m, 폭 20m의 통영대교는 상판 아치구간에 경관조명을 설치하여 밤이면 온화하고 푸근한 푸른 조명을 발산한다. 이 조명이 수면에 투영되면 럭비공 형태의 무수한 투영상이 만들어져 이 일대가 새로운 야간 관광 명소이자 낭만적인 산책로로 각광받고 있다.

미륵산에서 본 한려수도

통영 케이블카는 대한민국 경상남도 통영시 통영관광개발공사가 해발 461m 미륵산에서 운영하는 관광용 케이블카이다. 대한민국 내에서 가장 긴 1,975m의 케이블카로 정식 명칭은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