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8경

진주성 촉석루

진주성 내에 있는 촉석루는 부벽루, 영남루와 함께 조선의 3대 누각 중 하나이다. 성의 남쪽 끝 벼랑 위에 있는 정면 5칸, 측면 4칸의 5량 팔작집으로 진주성의 주장대(主將臺)이며 남장대라고도 한다. 고려 공민왕 때 세워진 이 누각은 임진왜란 등 수많은 역사의 소용돌이와 함께 애환을 함께 하다가 국보로 지정되었고 6.25때 미군기의 폭격으로 소실된 것을 1957년에 복원하였다.

 특히, 임진왜란, 3대 대첩 중의 하나인 진주성대첩(1592)으로 자존심이 꺾인 풍신수길이 이듬해에 특별 명령을 내려 복수전을 감행하니 당시 진주 인구의 절반인 7만 시민이 함께 전몰한 사건과 논개의 순국을 지켜본 진주성과 촉석루는 유서깊은 장소이다.

 6. 29일 패전 직후에 김천일, 최경회, 이종인, 고종회, 양산숙 등 수많은 장졸들이 촉석루 아래로 몸을 던져 자결하고 특히 논개의 순국은 지금껏 우리들에게 잘 알려지고 있다. 이듬해 패전 1주년부터는 진주성 내외의 거의 모든 시민이 순절한 분들을 위해 통곡을 하는데 이 소리가 인근 고을까지 들렸다고 한다. 이때부터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해마다 남강 변에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유등을 띄워 위령의식을 시작했고 지금에 와서는 개천예술제, 남강유등축제로 대체하고 있다. 

남강 의암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전라도 지역으로 가기 위해 진주성을 반드시 함락해야만 했었다. 첫 번째 공격에서 크게 패배한 왜군은 군사와 무기를 재정비하고 다시 진주성을 공격하였다. 이때 우리 군사들은 의병, 백성들과 함께 총공격을 하였지만 왜군의 공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진주성은 함락되고 말았다. 승리를 기뻐한 왜군의 장수들이 촉석루에서 잔치를 벌이자 논개가 곱게 단장을 하고 촉석루 아래의 가파른 바위에 섰다. 한 왜군 장수가 논개에게 접근하자 논개는 그 장수를 끌어안고 바위에서 떨어져 남강에 빠져 죽고 말았다. 훗날 그 바위를 의암이라 부르고 사당을 세워 논개의 뜻을 기렸다.

뒤벼리

남가람 문화거리를 마주보며 남강 가에 우뚝 솟은 벼랑으로 구미쳐 흐르는 남강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하는 곳이다.
진주성의 동쪽 기슭을 흘러가던 남강의 물결이 갑자기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휘돌아 흐르기 시작하면서 병풍을 두른듯
깎아지른 절벽이 강줄기를 따라가며 절정을 이루고 잇으니 남강의 오묘한 풍치를 연상케 하는 곳이다.

새벼리

시내로 들어오는 길목에 위치한 새벼리는 가좌동에서 주약동에 걸쳐있는 절벽을 말하는데 아래의 남강과 절벽을 따라 펼쳐진 도로가 주변경관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곳이다. 입구에는 석류공원이 조성되어 있으며 망원정에 오르면 칠암지역과 도동지역 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망진산 봉수대

고종 32년인 1895년 폐지전까지 수백년 동안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통신수단 기능을 가져 민중의 소리를 나타내기도 했다.1996년 8월 16일 폐지된지 1백여 년 만에 진주시민의 힘으로 ‘망진봉수’ 로 복원되어 현재 첨단통신 시설 중계탑인 진주 MBC의 망진산 송신소와 진주 KBS의 망진산 중계소가 설치돼 있다.

비봉산

시내에 소재하여 접근이 용이하고, 해발 138.5m의 자연 경관을 갖추고 있으며, 강이식 장군의 신위를 모셔둔 봉산사가 있고 비봉산의 봄은 진주 8경 중 하나이다.

등산로가 개발되어 진주 시민의 휴식 공간가지 활용되고 있으며, 진주시의 진산 비봉산 남쪽에 진주시가지가 발달 하였고, 비봉산 서쪽에 가마못이 있었으며 산을 중심으로 비봉 공원이 형성되어 있고 산 동쪽에 의곡사, 연화사 등이 있으며 산 서쪽 기슭에는 비봉루가 있다.

일설에 의하면 진주의 진산인 비봉산의 비봉은 봉이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봉이 항상 날고 있다는 것으로, 선비가 많이 배출된다는 뜻이다. 진양지의 월아산조에 이르기를 “산동쪽에는 비봉의 형국이 있어 옛부터 정승이나고, 산 서쪽에는 천마의 형국이 있어 장수가 날 것” 이라고 하였다.

옛날에는 비봉산을 대봉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비봉산을 마주보는 상봉동 주택가 평지에 흙을 쌓아올려 산과 같이 되어 있으며 그 복판이 패여있는 곳이 있는데 마치 새들의 알자리 같이 되어 있는 것이 “봉알자리”인데 상봉동 911-1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봉알자리는 가야시대의 고분인 것으로 전한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진주 강씨들 집안에서는 뛰어난 인물이 많이 나고 대봉산(현 비봉산)밑에 웅거하여 권세를 부렸으니, 세상 사람들이 대봉산 위에 봉암이 있기 때문이라고 일컬었다. 조정에서는 몰래 사람을 보내어 봉암을 깨어 없애고 봉은 이미 날아가 버렸다고 하니 날아간 봉을 다시 부르려면 알자리가 있어야 한다고 하여 지금의 위치에 “봉알자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월아산

월아산은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된 아름다운 산이다.
장군대봉과 국사봉 사이 밑바닥(질매재)에서 튀어 오르는 해돋이 광경은 금호지와 어우러져 탄성을 자아낸다.
또한 아산토월(牙山吐月)이라 하여 동쪽 멀리 우뚝 솟은 월아산이 달을 머금고 금호지에 토해내는 장면은 천하일품이다.

진양호

진양호는 덕천강과 경호강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인공호수이다.
이곳의 노을은 진양호 주변경관과 어우러져 무한한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공원으로 조성된 진양호는 연인들과 가족들의 휴식공간으로, 데이트 장소로 즐겨 찾는 곳으로 노을과 함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