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세계 11대 불가사의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일부 작가들은 중세에 지어진 불가사의들의 목록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아래 목록의 건축물들 중 상당수는 중세에 지어진 것이 아니지만, 중세의 불가사의로 잘 알려진 것들이다. 전형적인 중세의 세계 7대 불가사의의 목록 외 4개 목록이 첨가되어 모두 11개로 늘어난 목록은 다음과 같다.

1.스톤헨지

스톤헨지(영어: Stonehenge)는 영국 남부 윌트셔 주 솔즈베리(Salisbury) 평원과 에이브버리에 있는 선사 시대의 거석기념물(巨石記念物)에 있는 환상 열석 유적이다. 높이 8미터, 무게 50톤에 달하는 거석 여든여개가 세워져 있다. 수수께끼의 선사시대 유적으로 누가, 어떻게, 왜 만들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풀려지지 않고 있다.

2. 콜로세움

콜로세움(Colosseum, 이탈리아어: Colosseo 콜로세오[*])은 고대 로마 시대의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로마 제국 시대에 만들어진 원형 경기장이다. 석회암, 응회암, 콘크리트 등으로 지어져 있고, 5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다. 로마의 중심지에 위치하여있고, 현재는로마를 대표하는유명한 관광지로 탈바꿈하였다. 콜로세움이라는 이름은 근처에 있었던 네로 황제의 동상(巨像:colossus)에서 유래한다. 원래 이름은 플라비우스 원형 경기장으로, 서기 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가 착공해 8년 뒤에 아들인 티투스 황제가 완공했다.[1] 콜로세움은 수 세기 동안 계속 개축되어왔고, 로마 제국의 전성기에는 5만 명에서 8만 명의 관중들을 수용할 수 있었다. 콜로세움에서는 주로 검투사들의 결투가 이루어졌으며, 모의 해전, 동물 사냥, 신화의 재연 등 다양한 행사들이 펼쳐졌다. 다만 중세에 이르러 제국이 쇠퇴하고 로마가 폐허로 변하자, 콜로세움도 이와 같은 변화를 피하지 못하고 주성이 개집, 화장실, 침실과 같은 용도로 사용되었다.

콜로세움은 강도, 약탈, 채석과 같은 파괴 행위로 상당 부분이 손상을 입었으나, 여전히 로마의 상징과 같이 여겨지고 있다. 로마에서 가장 인기있는 관광지 중 하나이며 2018년에는 480만 명의 관광객들을 끌어들였다.

콜로세움은 이탈리아에서 사용되는 5센트 유로화 동전에도 새겨져 있다.

3. 카타콤

카타콤(Catacombs)은 라틴어 단어들 “가운데”(cata)와 “무덤들”(tumbas)이 합성되어 “무덤들 가운데”(among the tombs)라는 의미이다. 무덤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좁은 통로로 이루어진 지하 묘지이다. 기독교인들이 로마 제국의 박해기에는 피신처의 역할을 하기도 했고 순교자의 무덤에서 미사를 드리기도 했다. 카타콤은 거주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며 주로 지하묘지로 사용되었고, 죽은이를 위한 예식과 기도를 드렸던 곳이다. 카타콤바에는 프레스코화로 그려진 최초의 그리스도교 미술이 남아있으며, 벽면에 십자가와 물고기, 그리고 닻 등 그리스도교 상징이 새겨져 있다. 물고기는 그리스도교 상징으로서, IXOCE (익투스 또는 이크티스) 라는 암호를 사용했는데, 이는 물고기를 뜻하기도 하지만 권능자를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물고기를 그리며 서로 기독교인임을 확인하였다. IXOCE는 Ιησους Χριστος Θεου Υιος Σωτηρ(이에수스 크리스토스 테우 휘오스 소테르, 이이소이스 크리스토스 쎄오이 이이오스 소티르)의 첫 글자를 따와서 생겨난 말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 구원자(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또는 ‘주님은 저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4. 만리장성

만리장성(중국어 정체자萬里長城, 간체자万里长城, 병음Wànlĭ Chángchéng 완리창청[*])은 흉노족 등의 유목 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중국의 고대 진나라(시황제) 때 기존의 성곽을 잇고 부족한 부분은 새롭게 축조하여 만든 거대한 성곽이다. 이후 명나라 시대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 지속적으로 보수하고 개축 및 신축하여 현재 까지 남아 있으며 중국을 상징하는 대표 적인 유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1987년에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됨.

5. 영곡탑

영곡탑 혹은 자기탑은 난징에 있는 탑으로, 대보은사의 일부였다. 중국 난징에 위치해 있으며, 15세기 명나라 시대에 건축되었다.하지만 19세기 태평천국의 난 때 대부분 파괴되었으며, 현재 그 복제품이 난징에 복원되어있다.2010년에 한 중국 사업가가 난징시에 영곡탑을 복원하기 위해 1억 5600만 달러를 기부하였다. 이는 중국 역사상 개인이 낸 기부금 중 가장 많은 액수이며, 2015년에 복원된 영곡탑과 그 주변 일대가 대중들에게 개방되었다.

6. 아야 소피아

아야 소피아 또는 하기아 소피아(그리스어: Αγία Σοφία 고대: 하기아 소피아, 현대: 아야 소피아[*]라틴어: Sancta Sophia 상크타 소피아[*]터키어: Ayasofya 아야소프야[*], ‘소피아 성녀’라는 뜻)의 정식 명칭은 하기아 소피아 그랜드 모스크이다. 터키의 이스탄불에 있는 동방 정교회 대성당으로 세워졌으며, 현재는 이슬람 모스크로 사용 중이다. 

537년에 1453년까지는 그리스 정교회 성당이자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의 총본산이었다.[1] 다만 콘스탄티노폴리스가 라틴 제국에 의해서 점령된 1204년부터 1261년까지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당으로 개조되었다가 이후 다시 정교회 성당으로 복귀하였다.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1453년 5월 29일부터 1931년까지는 모스크로 사용되었고, 1935년에 박물관으로 다시 개장했다.[2] 허나 2020년 7월 10일에 에르도안 대통령의 지시로 다시 박물관에서 모스크로 바뀌었고, 현재는 ‘하기아 소피아 그랜드 모스크(The Hagia Sophia Grand Mosque)’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비잔티움 건축의 대표작으로 세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건축물로 여겨지고 있다. 로마 제국의 건물이라고 하여, 기독교의 문화유산으로만 생각할 수도 있으나, 이슬람교와도 관련이 크며, 500년 가까이 이슬람교 신자들의 예배당으로 사용되었다. 성당 옆에 있는 4개의 탑들은 미나레트라고 부른다.

7. 피사의 사탑

피사의 사탑(이탈리아어: Torre di Pisa)은 이탈리아 서부 토스카나주의 피사에 있는 피사 대성당의 종루(鐘樓)로, 기울어진 탑으로 유명하다.

1173년 8월 9일 착공 시에는 수직이었으나, 13세기에 들어 탑의 기울어짐이 발견되었다.

높이는 지상으로부터 55m, 계단은 297개로 이루어졌으며, 무게는 14,453t이다.

지반에 가해지는 평균 응력은 50.7tf/m2란 계산 결과가 나왔다.

현재의 기울기의 각도는 약 5.5°이고 기울기의 진행은 여러 차례의 보수공사로 멈추었다. 흔히 중세의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불리고 있다.

8.타지마할

타지마할(힌디어: ताज महल, 우르두어: تاج محل, 페르시아어: تاج محل)은 인도 아그라에 위치한 무굴 제국의 대표적 건축물이다. 무굴 제국의 황제 샤 자한이 자신의 총애하였던 부인 뭄타즈 마할로 알려진 아르주망 바누 베굼을 기리기 위하여 1632년에 무덤 건축을 명하여 2만여 명이 넘는 노동자를 동원하여 건설하였다. 건축의 총 책임자는 우스타드 아마드 로하리로 알려져 있고, 뭄타즈 마할이 죽은지 6개월 후부터 건설을 시작하여 완공에 22년이 걸렸다. 타지마할은 총 17헥타르에 달하는 거대한 무덤군의 중심 부분이며, 실제로 무덤군은 응접실, 모스크 등이 따로 딸려있다. 영묘의 건설은 거의 대부분 1643년에 완료되었으나, 추가적인 보조 작업이 약 10년 동안 진행되어 1653년에야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모습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타지마할을 건설하는 데에는 당시 가치로 3천 2백만 루피아, 현재의 가치로는 8억 2천 7백만 달러가 소요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타지마할 건설 당시, 황제 직속 건축가인 우스타드 아흐메드 라하우리의 감독 아래 20,000여 명에 달하는 예술가들이 작업에 참여하였다.

타지마할은 페르시아터키인도 및 이슬람의 건축 양식이 잘 조합된 무굴 건축의 가장 훌륭한 예이다. 1983년 타지마할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인도에 위치한 무슬림 예술의 보석이며 인류가 보편적으로 감탄할 수 있는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일반적으로 흰색 대리석 의 영묘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으나, 타지마할의 규모는 더 크다. 네 귀퉁이의 높이 40미터의 미나레트는 수직으로 보이나 붕괴가 발생했을 때 건물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미세하게 바깥쪽을 향하고 있다.

샤 자한이 타지마할이 완성된 직후 타지마할보다 더 아름다운 건물을 만드는 것을 막기 위하여 공사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의 손목을 잘랐다는 설화가 내려오지만, 거의 대부분의 고고학자들은 이를 그저 허구적 이야기로 치부하고 있다. 2007년 7월 7일 신(新) 세계 7대 기적에 선정되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 타지마할의 한 첨탑이 점점 기울고 있다는 것을 BBC방송에서 발견하였다. 인도의 아그라 야무나 강(Yamuna River Agra)에 타지마할이 세워졌는다. 그 기초를 안정적인 유지를 위해 흑단나무로 했는데 아그라 야무나 강(Yamuna River Agra)이 완전히 마르면서 지난 30년 동안 3.5cm가 기울었다고 보도했다.

9.카이로 성채

카이로 성채 혹은 살라딘 성채(아랍어: قلعة صلاح الدين)는 이집트 카이로에 있는 중세시대 이슬람식 성채이다. 자세한 위치는 카이로 중심부 근방에 위치한 언덕인 모카탐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늘날에는 무함마드 알리 모스크와 박물관 등 역사적인 사적지를 보존하고 있다.

10.엘리 대성당

Ely Cathedral , 공식적으로 Holy and Undivided Trinity 의 대성당 교회는 영국 Cambridgeshire 의 Ely 시에 있는 성공회 대성당 입니다. 대성당은 성 Etheldreda 가 수도원 교회를 지었을 때 AD 672에서 시작되었습니다 . 현재 건물은 1083 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1109 년에 성당 지위를 부여 받았습니다.

종교 개혁 전까지는 성 에델 드레 다 교회와 성 베드로 교회였으며, 당시에는 엘리의 성스러운 삼위 일체 성당으로 재창립되었습니다. Cambridgeshire 에있는 Ely 교구의 주요 교회로 계속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것은의 자리입니다 엘리의 감독 과 부 감독 주교 는 헌팅의 주교 . 건축 학적으로 규모와 문체 세부 사항 모두에서 탁월합니다. 기념비적 인 로마네스크 양식 에 지어졌습니다.스타일, 갈릴리 현관, 숙녀 예배당 및 합창단은 활기 넘치는 Decorated Gothic으로 재건되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중앙의 팔각형 타워이며 위에 랜턴이있어 독특한 내부 공간을 제공하고 웨스트 타워와 함께 주변 경관을 지배합니다. Ely Cathedral은 연간 약 250,000 명의 방문객이 방문하는 주요 관광지이며 [1] 매일 아침 및 저녁 서비스 패턴을 유지합니다. 

11.클뤼니 수도원

클뤼니 수도원(프랑스어: Abbaye de Cluny)은 프랑스 클뤼니에 있는 수도원으로 전에 베네딕도회 소속 기독교 수도원이었다. 이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세 개의 교회로 이루어졌으며, 10 ~ 12세기 경 완공되었다.

클뤼니 수도원은 윌리엄 1세 (프랑스)에 의해 910년 지어졌다. 그는 베르노 수도원장을 교황 세르지오 3세의 인허 하에 클뤼니 수도원의 첫 수도원장으로 임명하였다. 수도원에서는 베네딕도 규칙서를 철저히 지켰고, 서양의 군주들이 수도원 생활하는 것을 인정하였다. 11세기 베네딕트 회의 설립은 유럽사회의 핵심이었다. 한편 12세기에 이르기까지 수차례에 걸쳐 증 ·개축을 거듭하면서 수도원의 규모가 커졌는데, 18세기 말부터 19세기에 걸쳐 위그노 및 프랑스혁명을 거치며 거의 파괴되고 말았다. 현재는 몇몇 부분만 남아있게 되었다. 1334년 클뤼니 수도원장은 파리에 있는 호텔 데 클뤼니라는 타운하우스(연립주택)을 유지하고, 이는 1843년 공립 박물관으로 재탄생했다. 이름과 달리 이는 클뤼니 수도원과 더이상 연결되어 있지 않는다.클뤼니 수도원의 휘장이 수도원이 유명한 것은 ‘클뤼니 개혁’으로 불리는 수도원 개혁운동의 중심이 되었기 때문이다.